스페인 대항해시대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15세기 후반, 세계는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 시기를 우리는 흔히 "대항해시대" 라고 부른다.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주도했던 이 시대는 인류 역사상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고, 지금 우리가 아는 세계지도가 탄생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 중심에는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인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ristóbal Colón, 영어로는 Christopher Columbus)가 있었다.
대항해시대의 시작
대항해시대는 15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반까지 이어진 시기로, 유럽인들이 신대륙과 새로운 무역로를 찾기 위해 바다를 건너 탐험을 시작한 시기다. 왜 이때 갑자기 전 세계로 항해를 떠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적 이익과 새로운 무역로 확보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은 향신료, 비단, 보석 등 동방(인도, 중국 등)에서 오는 귀한 상품에 목말라 있었다. 그러나 육로로 가기에는 오스만 제국이 중간을 차지하고 있어서 통행이 위험하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직접 바다를 통해 동방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찾으려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가장 먼저 나선 나라는 포르투갈이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남하하면서 인도양으로 가는 길을 개척했다. 그리고 스페인은 포르투갈보다 더 큰 꿈을 꿨다. 그들은 서쪽으로 가면 동방에 도달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콜럼버스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누구인가?
콜럼버스는 1451년 이탈리아 제노바 공화국(현재의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바다를 넘나들며 경험을 쌓았고, 당시 지도 제작, 항해술에도 익숙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단순한 선원이 아니었다. 그는 "서쪽으로 가면 인도로 갈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매료되었다.
이 이론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었다. 이미 고대부터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지구의 크기를 너무 작게 생각했다. 콜럼버스도 지구의 둘레를 실제보다 훨씬 작게 계산했다. 그래서 대서양을 건너면 금방 인도나 중국에 닿을 수 있다고 믿었다.
콜럼버스는 자신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 나라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포르투갈, 잉글랜드, 프랑스 모두 그의 계획을 터무니없다고 여겼다. 결국, 그는 스페인으로 눈을 돌렸다.
스페인 왕실과의 계약
당시 스페인은 결혼을 통해 카스티야와 아라곤이라는 두 왕국이 통합되며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사벨 1세(카스티야)와 페르난도 2세(아라곤) 부부는 스페인을 통합해 이슬람 세력(그라나다 왕국)을 완전히 축출하는 데 성공한 직후였다.
그들은 콜럼버스의 계획을 "한 번 걸어볼 만한 도박"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신대륙 발견이 아니라, 동방과 새로운 무역로를 찾을 가능성에 매력을 느꼈다.
결국 1492년, 콜럼버스는 스페인 왕실과 계약을 맺고 항해를 떠나게 된다. 이 계약에서 콜럼버스는 발견할 땅의 총독이 되며, 막대한 이익의 일부를 보장받는 조건을 얻었다.
콜럼버스의 첫 번째 항해
1492년 8월 3일, 콜럼버스는 세 척의 배(산타마리아호, 핀타호, 니냐호)를 이끌고 스페인 남부 팔로스 항을 출발했다. 그는 서쪽으로 항해하여 아틀란틱을 건넜다.
10주 가까이 이어진 긴 항해 끝에, 10월 12일, 선원들은 드디어 육지를 발견했다. 현재의 바하마 제도 중 하나로 추정되는 섬이었다. 콜럼버스는 이곳을 '인디아스'(Indias)라 불렀다. 왜냐하면 그가 도착한 곳이 인도 근처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후 콜럼버스는 쿠바, 히스파니올라(현재의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이 있는 섬) 등을 탐험했다. 그는 이곳에서 약간의 금과 진귀한 물건을 손에 넣고, 일부 원주민을 데리고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스페인은 그의 성공을 크게 환영했다. 왕실은 콜럼버스를 영웅으로 대접했고, 그는 곧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항해까지 이어가게 된다.
신대륙의 발견과 그 의미
흥미롭게도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도착한 곳이 아메리카 대륙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이 인도 근처 섬들을 발견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항해는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항해 이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정복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금, 은이 유럽으로 유입되었고, 신대륙에서는 대규모 식민지 건설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원주민 사회가 파괴되고, 아프리카 노예무역이 본격화되는 등 부정적인 역사도 함께 시작되었다.
스페인의 세계 제국 건설
콜럼버스 이후,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의 넓은 지역을 차지하게 된다. 멕시코에서는 에르난 코르테스가 아스텍 제국을 무너뜨렸고, 남아메리카에서는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잉카 제국을 정복했다.
스페인은 막대한 부를 쌓으며 16세기 내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불리게 된다. 물론 이 부와 권력을 둘러싼 유럽 국가들 간의 전쟁도 끊이지 않았다.
콜럼버스의 평가
콜럼버스는 오늘날까지도 평가가 엇갈린 인물이다. 한편에서는 "신대륙을 연 영웅"으로 찬양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원주민 학살과 식민지 지배의 시작점"으로 비판받는다.
분명한 것은 콜럼버스가 인류사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는 점이다. 그의 항해가 없었다면, 지금의 세계지도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